시인 이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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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천의 시조     畵音時調

     

 까치밥    

                             -이원천-

심야버스 마지막 달빛마저 끌고 간 뒤
싸늘한 밤에 기대 허기의 뼈를 만져본다
이면로 달리지 못한 꿈도 끙, 돌아눕고

 

갈 곳도 오랄 곳도 어디 없는 지도 속을
둥둥 떠 부표처럼 깜빡깜빡 헤매는 밤
눈 소식 아득도 하다 하늘 저도 빈 몸이다

 

허리 굽혀 누군가 흩어진 꿈 쓸고 가는
가파른 언덕배기 붉게 걸린 가로등
세상 저 귀퉁이마다 까치밥은 남아 있다

 

나머지 생 내걸까 얼음장 어둠 속에
얼얼하게 달궈낸 단내 나는 목숨이여
깍깍깍 쪼아대는 부리 절망마저 밥이다

 

[당선소감-정형시인 시조 매진]


나, 문득 어린 시절 사랑방이 생각난다.
온 마을 두루마기들 모두 빙 둘러 앉아
한 세상 흰 날갯죽지 쳐 올리던 선학들

 

선친과 친구 분들의 시조창을 들으며 자랐던 내 어린 시절, 시조는 자연스럽게 내 몸 속에 녹아들었다. 누님이 읽던 잡지의 글들을 어깨 너머로 즐겨 읽던 일, 시냇물을 거슬러 오르던 은어 떼를 친구들과 함께 좇던 일, 아련한 추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고향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 같다.

고향과 가까운 매일신문사에서 저에게 시조를 향한 첫 문을 열어주신 것을 더욱 큰 영광으로 생각하며 부족한 글을 선택해주신 심사위원님께 깊이 고개를 숙입니다.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문화의 유산이자 이 땅 유일의 정형시인 시조를 위해 다소 늦은 입문이지만 꾸준히 걸어가리라고 다짐을 해봅니다. 낳아주신 부모님과 소질을 키워주신 스승님, 묵묵히 기다려준 가족 모두에게 감사를 드리며 기쁨을 함께 합니다.

 

오늘도 님의 모습 時空없이 오십니다.
드는 잠 깨는 잠 녹차 잔 속으로도
느지막 얻은 이 사랑 품어 함께 하렵니다.

 

[심사평-시적 얼개 속에 잘 짜인 생명의지]


번잡한 세상 속에 시는 늘 떠다닌다. 눈부신 감성이 눈부신 시를, 활달한 상상력이 활달한 시를 만난다. 우리가 신인들한테서 기대하는 바도 바로 이러한 시가 던지는 새로움의 파장이다.

이교상씨의 '꽃의 내부'와 김경미씨의 '구석'이 미묘한 정신의 풍경을 그려낸다면, 이분순씨의'아파트, 한낮'과 김정숙씨의 '병실 풍경'은 생활 주변의 체험적 상황을 담고 있다. 작품의 곳곳에 번득이는 표현들이 눈길을 끌었으나, 완성도 측면에서 좀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고 본다. 황성진씨의 '백야, 옛집에 들어'와 배인숙씨의 '이명 앓는 지리산 자락'은 자성의 시각으로 역사 인물에 다가가고 있지만, 대상에 대한 나름의 해석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마지막까지 선자의 손에 남은 두 편은 현실 감각이 단연 돋보인다. 이태린씨의 '녹슨 배'가 가지는 서사 구조의 치열함은 쉬 떨치기 어려울 만큼 소중한 시적 자양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거듭해 읽는 가운데 어딘가 설익은 채 떠도는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한 게 흠이다.

당선의 영예를 안은 이원천씨의 '까치밥'은 '심야버스'나 '이면로' 등이 상징하는 도시적 삶의 진정성을 감동적으로 묘파한 작품이다. 부유하는 존재의 허기와 '절망마저 밥'이 되는 강인한 생명의지가 잘 짜인 시적 얼개 속에 밀도를 더해 준다. '세상 저 귀퉁이마다' 남아 있는 '까치밥'은 이제 새로운 시인 이원천이 켜든 생존의 등불이다. 좁고 가파른 정형의 길에서 또 한 사람의 동행을 만나는 기쁨이 크다.

 -박기섭(시조 시인)-

 2004. 1. 1. 매일신문

 

   

  

월간 샘터 2003년 2월호에 수록

       

        대운산(大雲山) 

                  -이원천-

          내원암 품에 안고

          동해로 눈길 둔 채

 

          참나무 참꽃들과

          더불어 살라 한다.

          

          큰 구름

          늘 머무는 산

          오늘 나도 시름을 푼다.

 

                                                             

[뽑는 말]

한 편의 시조 작품을 창작하는 데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시상의 포착과 전개가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소재를 가지고 작품을 쓸 때, 가장 구체적이고 인상적인 체험이나 이미지를 선택하여 시의 씨앗으로 삼고 시의 싹을 트게 하는 일이다. 한 편의 시조 작품을 대할 때 제목이나 묘사, 운율과 같은 여러 요소를 살펴 공감하지만 그보다도 시상의 포착이 경이로울 때 즉, 창조의 결과가 가치 있고 깊은 의미가 부여될 때 독자에게 공감되고 애송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복순의 <대청소>와 이원천의 <대운산>은 시상의 포착은 물론 그 전개 면에 있어서 시적 안정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원천의 <대운산>은 어느 정도의 숙련도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단형 시조의 짧은 형식에 맞는 표현 기교와 효과적인 시어 선택이 사상과 감흥을 잘 갈무리하고 있다.

- 김 준(시조 시인. 서울여대 교수) -

 월간 샘터 2003년 2월호에 수록된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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