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시적 얼개 속에 잘 짜인 생명의지]
번잡한 세상 속에 시는 늘 떠다닌다. 눈부신 감성이 눈부신 시를, 활달한 상상력이 활달한 시를 만난다. 우리가 신인들한테서 기대하는 바도 바로 이러한 시가 던지는 새로움의 파장이다.
이교상씨의 '꽃의 내부'와 김경미씨의 '구석'이 미묘한 정신의 풍경을 그려낸다면, 이분순씨의'아파트, 한낮'과 김정숙씨의 '병실 풍경'은 생활 주변의 체험적 상황을 담고 있다. 작품의 곳곳에 번득이는 표현들이 눈길을 끌었으나, 완성도 측면에서 좀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고 본다. 황성진씨의 '백야, 옛집에 들어'와 배인숙씨의 '이명 앓는 지리산 자락'은 자성의 시각으로 역사 인물에 다가가고 있지만, 대상에 대한 나름의 해석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마지막까지 선자의 손에 남은 두 편은 현실 감각이 단연 돋보인다. 이태린씨의 '녹슨 배'가 가지는 서사 구조의 치열함은 쉬 떨치기 어려울 만큼 소중한 시적 자양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거듭해 읽는 가운데 어딘가 설익은 채 떠도는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한 게 흠이다.
당선의 영예를 안은 이원천씨의 '까치밥'은 '심야버스'나 '이면로' 등이 상징하는 도시적 삶의 진정성을 감동적으로 묘파한 작품이다. 부유하는 존재의 허기와 '절망마저 밥'이 되는 강인한 생명의지가 잘 짜인 시적 얼개 속에 밀도를 더해 준다. '세상 저 귀퉁이마다' 남아 있는 '까치밥'은 이제 새로운 시인 이원천이 켜든 생존의 등불이다. 좁고 가파른 정형의 길에서 또 한 사람의 동행을 만나는 기쁨이 크다.
-박기섭(시조 시인)-
2004. 1. 1. 매일신문 |